창업 활동을 잠시 마무리 하며
지난 6년간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제 인생을 바쳐 몰입하였습니다.
이제 병역을 해결함에 즈음하여 창업가로서는 잠시 내려놓는 기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저에게는 특유의 반항아 기질이 있습니다. 돌아보니 스스로 조직원으로서 잘 어울렸던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학교를 가도 이럴거면 내가 학교를 만들겠다는 꿈을 꿨고, 동아리를 가도 차라리 내가 동아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에 산적한 사회적 문제를 배우면서는 ‘꼭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창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저였습니다. 창업한 분들 사이에서 우스겟소리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내가 회사에 가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저도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군대도 안 다녀온 저는 창업가로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미숙했지만,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기에 제가 경험하기에는 과분한 자리에서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첫 사회생활을 리더로서 하다보니 많은 실수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부족한 면을 많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로서는 자랑스럽게 성장할 수 있었기에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왜 창업을 그만두게 되었는가?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는 병역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병역특례를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많은 분들이 “에이 입대도 안하면서 무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병역특례로 사회복무를 한다고 해도 창업과 병역을 동시에 수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당장은 피할 수 있어도 언젠가는 직면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처음 창업할때도 언젠가 병역때문에 골치 아플 일이 있을 것을 알았지만 무모하고 자신있게 창업하였습니다.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마인드였습니다. 실제로 2~3년 안에 궤도에 오른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저와 저의 동료들 역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어느정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했던 기간 안에 기대헀던 결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밀어 붙이자는 마음으로 두 세번의 기회를 엿보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가진 단기적인 목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회사를 빠르게 매각해서 행복하게 군대가기
2. 회사에 창업자가 없더라도 회사가 굴러가도록 단기간에 궤도에 올리기
돌아보면, 이런 마인드로는 좋은 조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창업을 하겠다면 평생 안고 가야된다고 생각합니다. 한탕 하고 가겠다는 마인드를 가진 창업자를 싫어했는데 저도 조급해지니 수치적인 성장만을 쫒아 가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겪으며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단순한 직원도 아니고 창업자로 함께하는데 제 창업 목표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되버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제가 속한 조직의 성과를 1순위로 두고 일하지 못하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플래시 창업 활동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중 가장 큰 이유를 돌아보았습니다. 창업가가 인생을 걸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창업가로서 꿈을 꾼다면 컨트롤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빠르게 없애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창업과 제 인생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욕심입니다. 결국 다음 기회를 노리려면 지금이 가장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이어져 창업 활동을 중단하고 취업을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Intrapreneurship을 들어보셨나요? 기업가 정신 이라고 불리는 것의 변형입니다. 기업가 정신은 자신의 사업을 직접 만들어 가는 정신에 그치지 않습니다. 조직 구성원으로서 사내 기업가 정신을 갖게 되면 진정한 오너십을 가지고 조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창업의 도전은 잠시 내려놓지만 앞으로는 사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기여해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기회가 된다면 창업을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음 창업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게된다면 미디어 분야의 창업을 하고싶은데, 5년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ㅎㅎ… 그때까진 꼭 1인분 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되려보려고 합니다.
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려고 하나?

저를 어릴때부터 보신 분들은 왜 개발자가 되지 않았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러다보니 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왜 창업을 하는지를 설명하고 다니다 보니 면접때 말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왜 굳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려고 할까요?
어릴때부터 컴퓨터를 너무 오래하다 보니 컴퓨터가 너무 좋아졌습니다. 진로를 갖기 힘들어하는 요즘 시대에 일찍 확고한 진로 희망을 가지고 IT특성과고등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아쉽게도 경영을 배우는 e-비즈니스과에 진학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당연히 개발자가 될 것이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스타트업에 대해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개발자가 아닌 다른 역할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당시 생각으로는 개발은 언제든 배우고 도전할 수 있지만 다른 학문은 누군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전문적으로 배우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 개발자는 많은데 조직, 재무, 법률, 정책을 다루는 사람은 없던 것도 한 몫 했습니다. 뭔가 특출난 것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에 경영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학교를 경영학과로 진학했음에도 개발에 관심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꾸역꾸역 찾아가며 코딩해서 간단한 API 정도는 만들 수 있었기에, 외주도 몇개 해보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몇개 도전하였지만 스스로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수준이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스플래시 창업을 시작하면서 저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친구들은 개발을 하기를 좋아하니 참 다행이였습니다. 초기 팀에서 개발자 찾기가 그렇게 힘든데 개발 안할 사람을 정해야 한다니… 내가 하고싶다고 해서 개발을 계속 잡고 있게 되면 장기적으로 팀에 어려움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운영을 담당해야 한다면 당연히 조직 운영에도 관심이 있는 제가 그 역할을 맡는 것이 맞았습니다. 그렇게 조직 운영자로서 역할을 시작했습니다.
마로마브로 이동한 후에도 조직 운영을 담당하는 타이틀을 가졌지만, 웹 팀 PO를 맡게 되어 웹 기술에 대해 계속 접할 수 있었고, 메이커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강의하며 소프트웨어와 멀어지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급한 행사 전날 웹 서비스에 간단한 에러 수정이나 문구 수정 후 배포정도는 직접 해보기도 하였고 아두이노 코드는 질릴정도로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모예로 이직하여 운영팀을 담당하면서도 제가 개발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동화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시간을 많이 쓸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개발자가 아니기에 최대한 노코딩 툴을 사용하여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실제로 뭔가 구현해서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때 제가 가장 몰입하고 큰 희열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발과는 거리가 먼 상황에도 계속 코드를 만지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저를 돌아보며, 만약 내가 만든 회사가 아니라 내가 온전히 구성원으로서 일하게 된다면 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합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요즘은 개발자에 대한 처우가 좋아지기도 하고 산업이 발전하며 개발자가 주목을 받다보니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발에 대한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개발 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이 그러하겠지만, 진짜 좋아서 밤새가며 해도 힘들지 않은 일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풀타임 개발자로 해보지는 않아서 모르겠지만, 다른 것 보다 흥미가 오래 유지되는 것을 보니 개발자로 직업을 삼는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업가, 사업을 가장 잘 이해하는 기술자를 지향합니다. 팀에서 사업과 엔지니어링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 도움을 주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저를 소개할 때 사용하는 문구입니다. 기술적 배경 지식을 알고 있어서 개발자와 말 잘 통하는 경영자가 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온전한 하나의 엔지니어로서 실무를 해결할 수 있고, 온전한 하나의 경영자로서 조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욕심쟁이가 되겠다는 목표입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저는 ‘사람에 대한 일’에 대해 많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개발만 하다가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에 집중해보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술자로서 온전히 몰입해보려고 합니다.
왜 지금인가?

마지막에 함께한 모예에서는 저와 같은 처지인 창업가 친구와 만났습니다. 군대에 끌려가기 전까지 아쉽지 않을만한 성과를 만들고 깔끔하게 다녀오자는 결의를 하고 힘을 쥐어 짜냈습니다.돌아보면, 제가 모예로 가게 된 이유는 진짜 내가 하고싶은 일이여서가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수치적인 성과가 많이 나는 조직으로 옮기게 된 상황에서 비전/미션을 무시하고 숫자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비전/미션에 기반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똘똘 뭉치지는 못했기 때문에 비즈니스적 위기가 나타났을때 조직의 결집력이 약해졌습니다. 밤새가며 열심히 하긴 했습니다만 가망이 없겠다는 생각에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피벗에 피벗을 거듭하며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는 것이 맞지만 돌아갈 구석이 하나씩 있다보니 이쯤에서 그만 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3월 초부터 취업 준비생으로서 바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첫 코딩테스트, 첫 기술과제, 첫 기술면접, 첫 임원면접을 지냈습니다. 이 기간동안 새로운 경험을 참 많이 했습니다. 서류통과에서 날아갈듯 한 기쁨도 느껴보고, 면접 전날 이유 모를 불안함에 동이 터오를때까지 뒤척여보기도 했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며 조급함도 느껴보고, 탈락 통보라는 쓴 맛도 느껴 보았습니다. 지금껏 경험한 투자 유치나 정부지원사업과는 차원이 다른 절박함을 느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면접을 보면 볼 수록 갈길이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 기간동안 밀도있게 공부를 해보니 엔지니어가 된다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개발자가 되어야 겠습니다. 밤새고 머리를 쥐어짜는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개발자가 되면 최선을 다해 기여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수많은 실력자들이 밤낮을 고생해가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제가 감히 급하게 준비해서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개발자로 취업 준비를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가 가게 될 곳이 어디일지 모르기에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